도입 (받아 적느라 놓친 말)
월간 일정 회의가 한창일 때, 저는 노트북에 고개를 숙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손가락 아래로 말이 흘러가는 사이 맞은편에서 결정이 났고, 저는 옆자리에 "방금 뭐라고 했죠" 하고 되물었습니다.
되묻는 사이에 또 한 문장이 지나갔습니다.
적긴 적었는데, 정작 남은 건 앞뒤가 끊긴 단어 몇 개였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 메모를 읽으면, 제 기억과 메모가 서로 다른 말을 했습니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몰라서 결국 다시 물어보러 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원래 메모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못 적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적는 동안 듣지 못한다는 게 더 문제로 보였습니다.
내가 시도해본 것 (녹음하고 맡겨 보기)
지난 글에서 비교 기준을 어제의 나로 바꾸고, 거기서 "한발 더" 나가 보겠다고 적었습니다.
그 첫 실천으로 고른 게 회의 정리였습니다.
녹음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회의 시작할 때 참석자들에게 "정리용으로 녹음해 두겠습니다" 하고 먼저 말했고, 괜찮다는 답을 듣고 나서야 녹음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 한마디가 제일 어색했습니다.
다들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저 혼자 괜히 목소리가 작아지더라고요.
녹음 파일은 회의가 끝난 뒤 받아쓰기 기능으로 글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통째로 AI에게 주고, 안건과 논의, 결정, 할 일로 나눈 회의록 틀에 맞춰 정리시켰습니다.
회의록 AI라는 말은 들어 봤지만, 비개발자인 제가 직접 맡겨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정리된 글이 화면에 올라오는 동안 저는 팔짱을 끼고 기다렸습니다.
잘 안 된 부분 / 솔직한 감정
정리본을 읽기 전에, 저는 회의 중에 급하게 적어 둔 제 메모를 먼저 열어 봤습니다.
회의록의 뼈대는 그래도 제 메모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메모를 열자마자 막혔습니다.
분명 제가 적은 단어인데, 몇 개는 무슨 말을 적으려던 건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알아볼 수 있는 단어도 문제였습니다.
단어만 덩그러니 있고 앞뒤 말이 없으니, 누가 왜 꺼낸 얘기인지, 그래서 뭘 정한 건지가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받아 적느라 말을 놓친 건 알고 있었는데, 적어 둔 것마저 쓸 수 없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 조금 허탈했습니다.
녹음 버튼을 누르며 어색함을 견딘 것보다, 여태 제 메모가 이런 상태였다는 게 더 허탈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AI가 정리한 회의록을 제 메모와 나란히 놓고 대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리본을 믿어서가 아니라, 제 메모만으로는 아무것도 재구성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제 메모에서 알아볼 수 없던 단어를 회의록에서 찾아보니, 그 단어가 어느 안건에서 나온 말인지 보였습니다.
단어 하나만 남아 있던 자리에 앞뒤 맥락이 붙자 그제야 무슨 얘기였는지 떠올랐습니다.
한 줄씩 짚어 가다 보니 제 메모에 아예 없는 대목도 나왔습니다.
되묻느라 놓쳤던 그 부분이 회의록에는 논의와 결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회의록은 제 메모와 제 기억으로 썼습니다.
둘 다 못 믿는 상태에서 쓰니 매번 자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제 메모의 빈 곳을 비춰 주는 대조 자료가 있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회의록 AI가 해 준 건 정리를 대신한 게 아니라 제가 놓친 걸 찾을 수 있게 해 준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남길지는 여전히 제가 정했고, 그게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작은 다음 행동 + 마무리
제출하고 나니, 제 느낌으로는 회의 뒤 30분이 예전보다 많이 가벼웠습니다.
정리가 잘돼서가 아니라, 메모 앞에서 기억을 쥐어짜던 부담이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 제가 한 건 녹음했고, 글로 바꿨고, 정리시킨 뒤 제 메모와 견준 것뿐입니다.
한발 더라고 부르기에도 작은 걸음이지만, 지난 글의 어제의 나보다는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음 회의도 한 번 더 녹음해 두고, 회의 뒤에 제 메모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려 합니다.
그게 괜찮으면 보고서 초안도 한번 맡겨 볼 생각인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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